대전 새벽까지 여는 바와 안주 맛집

대전은 밤의 리듬이 늦게 달아오른다. 평일에도 11시를 넘겨서야 테이블이 꽉 차는 술집이 있고, 새벽 2시가 지나도 포장마차 골목에서 뜨거운 국물과 술잔이 오간다. 서울처럼 업종이 과도하게 쪼개지지 않았고, 부산처럼 해안가의 낭만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생활권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단골집들이 밤을 지킨다. 유성의 온천 로터리 근방, 둔산동 스카이라인 아래, 은행동 로데오 거리와 중앙로 뒷골목. 지역 주민들의 생활 동선과 야식의 실용성이 묶여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 글은 대전에서 새벽까지 영업하거나, 최소한 마지막 차가 끊긴 뒤에도 의지할 수 있는 바와 안주 맛집들을 중심으로, 실제로 다녀보며 겪은 범위에서 정리한 기록이다. 정확한 영업시간은 요일과 계절, 사장님의 체력에 따라 달라지니, 범위를 넉넉히 적고 현실적인 사용 팁을 덧붙였다.

동선부터 그리는 게 이기는 일

대전의 심야 영업지는 크게 네 개 동선으로 잡으면 효율이 좋다. 첫째, 둔산동 정부청사 - 갤러리아 타임월드 주변. 둘째, 은행동 으능정이거리 - 중앙로. 셋째, 유성온천역 - 봉명동 먹자골목. 넷째, 대전역 동광장 옆 노상포차 구역. 각 권역은 걸어서 10분 내외로店 간 이동이 가능하고, 택시 이동 시 기본요금+α 정도로 이어진다. 오후 9시 전후 시작이라면 둔산에서 1라운드, 은행동으로 2라운드, 남은 기세에 따라 유성 또는 대전역 포차로 마무리하는 루트가 현실적이다. 대전은 막차 이후 택시가 몰리는 시간대가 분명해 체감 대기가 발생한다. 1시 30분에서 2시가 그 구간인데, 이때는 차라리 포차에서 30분 더 머물며 국물과 물을 함께 적셔주는 편이 다음 날 몸에 유리하다.

둔산동, 바의 밸런스가 좋은 동네

둔산동은 대전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바 문화가 정착한 지역이라 칵테일, 와인, 위스키가 두루 편중 없이 분포한다. 새벽까지 열어주는 집이 해마다 변하지만, 기준점이 되는 몇 곳이 있다.

칵테일로 시작하고 싶다면, 백스바 타입의 소규모 카운터 숍들이 레벨을 지켜준다. 바의 밝기가 적당하고, 소리가 쓸데없이 크지 않아 대화가 가능한 편. 시그니처보다 클래식에 강한 바를 추천한다. 대전은 진 베이스 칵테일을 깔끔하게 내는 데 공이 들어간다. 주문 팁은 진 마티니나 마르게리타처럼 레시피가 단정한 술부터 시켜보는 것. 술잔의 온도, dilution, 올리브의 짠맛 관리가 균형을 말해준다. 둔산의 모 바에서는 1시 이후 손님이 줄면 바텐더가 레시피의 각도를 살짝 더 드라이하게 잡아준다. 이 시간대엔 속도가 중요하기보다 농도의 디테일이 즐겁다. 안주는 올리브나 건조 육포류 대신 치즈 한 점과 옅은 버터 쿠키를 받쳐 먹는 구성이 꽤 어울린다. 헤비한 튀김은 한 잔 더 마시기 어렵게 만든다.

와인바는 주당들보다 일찍 닫는 집이 많지만, 병 구성이 유연한 곳은 1시 반 전후까지 문을 열어준다. 대전 와인바의 이점은 가격대 설정을 솔직하게 하는 곳이 다수라는 점이다. 병 가격이 5만 원대 초중반부터 시작하는 곳이 적지 않고, 글라스도 1.2만 원 안팎으로 구성된다. 특정 와이너리를 단체로 떼온 바는 구성이 넓진 않아도 시음 동선이 간단하다. 새벽 시간대엔 타닌이 무거운 와인보다 산미가 살아있는 가메나 쥬라, 혹은 상큼한 이탈리아 내추럴 계열로 가야 마무리가 부드럽다. 안주는 토마토 기반 브루스케타보다 소금기 단정한 감자 요리나 앤초비를 얹은 따뜻한 빵이 술맛을 똑바로 세워준다.

둔산의 위스키 바는 토요일에 특히 붐빈다. 그중 하이볼을 주력으로 돌리는 집은 얼음 품질이 일정하고, 컵이 길다. 물과 탄산의 비율을 1:3에서 1:4 사이로 조정해 주는데, 늦은 시간일수록 1:4가 속을 덜 무겁게 한다. 안주로는 고추기름을 살짝 입힌 넛츠나 바삭하게 구워낸 바게트 칩, 소량의 건조 치즈가 좋다. 치즈 양을 과하게 시키면 하이볼의 선이 무뎌진다. 새벽 2시까지 버티는 날에는 하이볼 2잔과 물 2컵, 마지막으로 무알코올 음료를 하나 끼워 넣는 패턴이 다음 날 컨디션을 확연히 지켜준다.

은행동, 혼재의 골목이 주는 자유

은행동은 장르가 뒤섞인다. 스탠딩 맥주바 옆에서 사케바가 영업하고, 그 사이로 꼬치집과 라멘집이 동시에 불을 밝힌다. 새벽까지 열어주는 집의 밀도도 높다.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소주 전문 포차가 3시가 넘어서도 적당히 북적거리는 날이 있다. 여기서는 완성도 높은 칵테일을 기대하기보다, 새벽의 속사정에 맞는 안주와 술의 짝을 고르는 게 현명하다.

라멘집의 술안주 활용도가 의외로 높다. 은행동의 특정 라멘집은 마감 직전에도 육수 퀄리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탁한 기름층이 아니라 얇게 도는 향기유, 면의 삶기보다 차슈의 염도 관리로 승부를 본다. 술은 생맥 한 잔과 군더더기 없는 하이볼 정도가 적당하다. 라멘 그릇을 안주 삼아 술을 덧대면 다음 날 바로 후회한다. 그럴 땐 사이드로 내는 아사츠키 듬뿍 올린 교자, 멘마 절임, 반숙란이 진짜 안주다. 그 세 가지 사이드에 맥주 1, 하이볼 1이면 새벽 2시 30분도 전혀 무리 없다.

꼬치집은 은행동의 밤을 지탱하는 업종이다. 야키토리 스타일로 목살과 닭다리, 츠쿠네, 염통, 닭껍질이 한 판으로 돌아간다. 새벽에 가까워질수록 소금구이가 간을 안정적으로 잡아낸다. 타레가 오래 졸다 보면 단맛이 떠서 술과 충돌하는 때가 있는데, 그 시간대엔 소금으로 길을 바꿔야 한다. 사케는 준마이의 드라이한 라인으로, 온도는 상온에서 약간 차갑게. 캔 사와를 하나 섞으면 템포 유지를 도와준다. 소주를 고른다면 레몬 슬라이스를 추가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편이 낫다.

은행동의 소주 포차는 메뉴판에 없거나 작은 글자로 적힌 한정 메뉴가 있다. 닭똥집 볶음, 오돌뼈, 대창구이 같은 익숙한 메뉴 대신, 생선조림과 오징어순대, 대전식 빈대떡을 만날 때가 있다. 조림류는 끓이는 시간이 쌓여 새벽에 맛있다. 국물의 염도와 당도가 한 번 더 섞인다. 오징어순대는 속을 너무 가득 채우지 않은 집이 좋다. 육수와 찹쌀의 끈기가 과하면 술이 지지부진해진다. 싱겁다 싶으면 소금보다는 다진 청양고추를 조금 넣어 간을 조절한다. 새벽에는 짠맛보다 신선한 매운맛이 피곤함을 덜고 술맛을 리셋해 준다.

유성, 온천의 온기가 남아 있는 밤

유성온천역 주변과 봉명동 먹자골목은 옛 호텔가의 기억이 남아 있다. 밤 늦게 숙박객과 상인, 학생들이 섞이고, 택시가 수월하게 잡히는 편이라 막차가 끊긴 뒤에도 불안하지 않다. 석쇠 위에서 한 번 더 향을 얹는 노가리와, 뼈대가 굵은 국물 안주가 강세다.

노가리는 단순하지만 새벽 술자리를 지탱하는 데 탁월하다. 유성의 몇 집은 굽는 시간과 간격을 정해두고 기계적으로 지킨다. 이렇게 하면 살이 마르지 않고 뼈에서 살이 쏙 빠진다. 여기에 마요네즈와 간장, 고춧가루를 비율 3:1:0.3 정도로 섞어 찍어 먹으면 단짠이 아닌 고소짠의 라인이 나온다. 하이볼, 라거, 막걸리 모두 어울린다. 막걸리를 고를 때는 단맛이 강한 브랜드보다 산미가 살아 있는 지역 탁주를 권한다. 노가리의 기름기와 만나면 감칠맛이 한 단계 올라간다.

국물 안주로는 해장국과 순댓국, 해물 라면이 있다. 해장국은 사골 베이스에 고춧가루를 기름지게 풀어낸 집보다, 맑은 육수에 우거지를 깊게 끓이는 집이 술과 더 맞는다. 늦은 시간에 자극이 강하면 잠이 얕아진다. 순댓국은 새벽 1시 이후엔 수육 추가를 무리하게 주문하지 않는 게 낫다. 고기가 좋으면 물론 좋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부속의 잡내 관리다. 다데기를 덜어내고 들깨가루를 살짝만 넣어 마시면 하이볼 한 잔, 물 한 컵, 순댓국 반 그릇이 최상의 균형을 만든다. 해물 라면은 새벽 3시 방향의 음식이다. 라면 스프의 MSG와 조개 국물이 만나면 술이 다시 들어간다. 그럴 때는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라면을 반으로 쪼개 끓이고, 면이 익는 동안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신다. 물이 술맛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아남게 한다.

대전역 포차, 덜 꾸민 밤의 진심

대전역 동광장 쪽 노상포차는 바람과 온도를 타는 공간이다. 겨울에는 방풍막 안으로 들어가면 어깨가 긴장하고, 여름에는 선풍기가 돌면서 바깥의 습기가 묻어온다. 이 컨디션이 음식의 맛에 영향을 준다. 포차에서 가장 믿을 만한 메뉴는 두 가지. 조개탕 계열과 철판 볶음류다.

조개탕은 새벽에 더 맑다. 조개가 더 신선해서가 아니라, 불의 사이클이 안정된다. 포차의 가스버너는 밤이 깊어질수록 일정한 중불로 굳는다. 이때 바지락과 홍합의 단맛이 과하게 올라오지 않고, 마늘과 청양, 다시마가 순서대로 얼굴을 내민다. 국물을 떠먹을 때는 국자로 냄비 바닥을 긁지 말고, 살짝 들어올려 중간층을 퍼야 쓴맛이 섞이지 않는다. 소주에 맞추려면 국물을 한 숟갈, 물을 한 모금, 소주를 한 모금의 순서를 반복하는 게 좋다. 몸이 기억하는 리듬이 만들어진다.

철판 볶음류는 오징어볶음, 돼지껍데기 볶음, 닭발이 주력이다. 새벽에는 양념의 단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당도 조절이 가능한지 먼저 물어보면 유리하다. 설탕을 줄이고 고춧가루의 양을 늘리면 혀에 남는 피로감이 덜하다. 닭발은 뼈가 있는 스타일이 식감은 하지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선 무뼈가 안전하다. 씹다 삼키다의 리듬이 맞으면 소주가 덜 과해진다. 탄산수를 함께 주문해 간격을 의식적으로 벌리는 것도 숙련된 방법이다.

새벽 영업을 잘 쓰는 법, 경험에서 나온 체크포인트

    자리에 앉자마자 물을 부탁한다. 술집마다 물잔 크기가 달라 감으로 마시면 모자란다. 테이블당 물병 하나를 확보하면 템포가 안정된다. 첫 잔을 빨리 비우지 않는다. 늦은 시간일수록 첫 잔의 속도를 늦추면 전체 섭취량이 줄어든다. 10분에 한 모금씩, 세 번을 나눠 본다. 안주를 두 개 이상 겹치지 않는다. 새벽에는 입이 허기져서 과주문하기 쉽다. 메인 하나에 사이드 하나. 더 먹고 싶으면 15분 뒤에 추가한다. 매운맛을 간 조절 수단으로 쓴다. 소금과 설탕 대신 다진 고추나 후추로 맛을 세우면 다음 날 붓기가 덜하다. 귀가 시간을 미리 정해 둔다. 2시 10분, 혹은 2시 40분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정해두고 알람을 맞추면 쓸데없는 연장이 줄어든다.

지역 안주에 술을 맞추는 기술

대전은 지역색이 강한 안주가 몇 가지 있다. 칼국수, 두부 두루치기, 가락국수 스타일의 어묵탕, 기름떡볶이. 이 음식들은 원래 식사이지만, 새벽에는 술안주로 변한다.

칼국수는 면의 면발이 주인공이 아니라 육수의 뒷맛이 핵심이다. 멸치와 다시마를 오래 우린 뒤 들기름을 한 방울 더한 집은 술이 들어간 위를 감싼다. 이때 소주보다 맥주가 낫다. 소주와 칼국수는 소화 부담이 겹친다. 맥주 한 잔, 칼국수 반 그릇, 김치 한 점. 면을 조금 남기더라도 국물은 끝까지 맑게 마시지 말고 중간에서 멈춘다. 바닥의 밀가루 찌꺼기가 다음 날 속을 무겁게 한다.

두부 두루치기는 밥을 부르는 맛인데, 밥을 참는 게 포인트다. 두부의 수분이 양념과 만나 술의 자극을 덜어준다. 단맛이 강하면 하이볼로 피하고, 감칠이 두드러지면 막걸리로 넘긴다. 막걸리는 330에서 500 사이의 용량이 적당하다. 750 병을 비우면 취기가 늦게 올라와 집에서 고생한다.

어묵탕은 은근히 와인과도 맞는다. 산미가 또렷한 화이트에 후추를 조금 갈아 넣으면 국물의 MSG와 포도산이 만나 즐거운 합이 난다. 다만 이 조합은 초보자에게 위험하다. 술이 술을 부른다. 그럴 땐 어묵 한 꼬치당 한 모금 규칙을 지킨다. 규칙이 미각을 지킨다.

기름떡볶이는 기름과 고춧가루의 향이 앞선다. 달지 않은 라거와 하이볼이 정답에 가깝다. 소주는 양을 줄여야 한다. 떡의 탄수화물이 알코올 흡수를 늦춘다고 믿는 경우가 있지만, 체감상 새벽에는 속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입, 한 모금, 물 한 모금의 3박자를 반복한다.

밤에 강한 집을 고르는 기준

대전은 새 가게가 빠르게 들어오지만, 밤에 강한 집은 따로 있다. 간판보다 작은 디테일이 힌트를 준다. 첫째, 얼음의 투명도와 크기가 일정하다. 하이볼, 온더락, 심지어 물컵의 얼음까지 일정하면 냉장고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물과 물수건이 늦지 않다. 바쁜 시간에도 물 리필이 빠르면, 술이 지나치게 빨라지지 않는다. 셋째, 마지막 주문 시간 안내가 명확하다. 새벽 1시 40분 라스트 오더를 1시 55분까지 끌지 않는다. 이런 집은 손님을 과하게 붙잡지 않고, 끝 맛을 건사한다. 넷째, 화장실의 상태가 일정하다. 밤이 깊어질수록 화장실이 정돈되어 있는 집은 기본기가 탄탄하다.

가격 감각, 과소비를 피하는 몇 가지 감각

대전은 심야에도 가격이 비교적 순하다. 그렇다고 무감각하면 안 된다. 병맥주 6천에서 7천, 하이볼 8천에서 1.2만, 소주 5천에서 6천이 흔한 범위다. 안주는 1만에서 2만대 중반. 꼬치집은 개당 3천 전후, 모듬은 1.5만에서 2.2만. 와인 글라스는 1만에서 1.5만, 병은 5만에서 10만의 구간이 안전하다. 대전역 포차의 조개탕은 소 2만대, 대 3만 중반이 보통이다.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면 분위기비를 쓰는 중이거나, 원재료에 자신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사장님이 원가와 이유를 설명해 준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설명이 애매하면 한 템포 줄이는 편이 낫다.

새벽 술, 다음 날을 남기는 법

밤을 누리되, 다음 날을 남겨야 한다. 경험상 효과가 있었던 방법만 적는다. 술자리 중간에 물 500ml를 반드시 넘긴다. 중탄산수는 복부 팽만이 싫다면 피한다. 마지막 잔 이후에는 짠 국물 대신 미지근한 보리차나 따뜻한 물이 좋다. 귀가 후 샤워 전에 5분 스트레칭을 하면 숙면이 길어진다. 해장 메뉴는 과감하게 늦춘다. 오전 11시 이전에 매운 해장국을 들이키면 몸이 다시 흥분한다. 오히려 바나나 하나와 요구르트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점심에 칼칼한 탕을 먹는 편이 회복이 빠르다. 직전 밤에 하이볼과 소주를 섞었다면 커피는 연하게, 두 잔을 나눠 마신다. 진하고 빠른 카페인은 두통을 당길 수 있다.

계절의 차이를 이용하는 지혜

대전의 밤은 계절을 탄다. 봄에는 테라스가 많은 둔산과 은행동의 소리 환경이 좋아진다. 실내의 잔향보다 바깥 공기의 건조함이 술의 향을 또렷하게 만든다. 여름은 유성의 강세. 온천 지대의 습기와 선풍기, 얼음의 조합이 하이볼과 생맥주를 돋운다. 가을은 와인바의 최적기다. 실내 온도가 안정되어 레드의 서빙 온도를 맞추기 쉽다. 겨울은 대전역 포차의 시즌이다. 김이 오르는 국물이 술의 강도를 낮춘다. 계절마다 최전선이 다르니, 같은 집도 다른 시간에 다르게 느껴진다.

동반자와 상황에 맞는 조합

두 사람이 가면 바의 카운터가 좋다. 바텐더와 눈인사를 할 수 있는 거리, 잔의 회전이 빠르고, 메뉴의 추천을 받기도 쉽다. 네 명 이상이 되면 포차나 꼬치집 같은 회전율 높은 집이 낫다. 네 잔의 다른 술을 동시에 컨트롤하기는 카운터에도 부담이다. 소개팅이나 조용한 대화가 필요하면 둔산의 클래식 칵테일바, 친구들과 흥을 올릴 땐 은행동의 꼬치와 사케, 밤을 길게 가져가고 싶으면 유성의 노가리와 하이볼, 마지막 안전 착륙은 대전역 포차의 조개탕으로 설계하면 무난하다.

예약의 요령과 즉흥의 미학

대전의 심야 바는 예약이 절대적이지 않다. 다만 금요일과 토요일, 특히 월급날 직후에는 달라진다. 칵테일바의 테이블석은 8시 전까지, 꼬치집은 9시 이후 회전이 일어나니 그 시간대를 노리면 예약 없이도 자리 찾기가 수월하다. 포차는 대체로 선착순이다. 비가 오는 날은 동선이 크게 틀어진다. 이런 날은 은행동 실내형 술집에 초반에 자리를 잡는 게 좋다. 즉흥은 재미를 만들지만, 동행의 컨디션과 귀가 수단을 고려한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여행자에게, 하루 밤의 압축 코스

대전이 처음인 사람에게 권하는 코스가 있다. 저녁 7시 둔산에서 클래식 칵테일 한 잔, 8시 반 와인 한 잔과 가벼운 따뜻한 안주, 10시 은행동으로 이동해 꼬치 모듬과 사케 한 합, 12시 유성으로 넘어가 노가리와 하이볼, 1시 30분 대전역 포차에서 조개탕으로 마무리. 총 이동 시간은 택시 기준 25분 내외, 비용은 한 사람당 5만에서 9만 사이. 이 코스는 새벽 2시 전후에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내려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느 한 지점에서 자리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도록, 각 스폿에서 한 잔만 마시고 물을 반드시 비워야 한다.

변하는 장면을 기록하는 태도

심야 영업은 생물이다. 사장님의 컨디션, 인력의 충원, 원재료의 가격과 수급에 따라 밤의 표정이 바뀐다. 몇 년 전 잘 맞았던 집이 어느 날부터 비슷한 양념을 반복할 때가 있다. 그때는 미련 없이 다른 골목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반대로 평범해 보이던 집이 어느 순간 바뀌는 것도 자주 본다. 얼음의 투명도가 달라지고, 소금의 그램 수가 조용히 줄어든다. 이런 변화를 알아차리는 재미가 있다. 대전의 밤은 이렇게 계절과 사람에 반응하며 살아 움직인다.

장소 이름을 나열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새벽까지 연다는 명목으로 억지로 버티는 집이 초가을과 초겨울, 시험기간과 방학 시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정 이름을 박아두면, 그 이름이 바뀌는 순간 글이 현실과 어긋난다. 대신 동선, 조합, 메뉴 선택의 기준을 풀어놓았다. 이런 기준은 가게가 바뀌어도 유효하다. 대전의 밤을 세심하게 즐기는 방법은 고정된 정답보다 상황을 읽는 눈에 달려 있다. 어느 날은 은행동의 교자와 하이볼이 최상이고, 또 어느 날은 유성의 순댓국과 라이트한 맥주가 답이다. 이천오피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실패가 줄어든다.

새벽까지 여는 바와 안주 맛집을 찾는 일은 결국, 내 페이스를 찾아가는 일이다. 잔의 속도, 물의 온도, 골목의 소음, 함께 앉은 사람의 컨디션. 그 모든 것을 맞추는 밤은 흔치 않다. 그래서 기억난다. 대전은 그 기억을 만들 곳이 충분하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목적지를 꼭 하나 정하지 않아도 좋다. 조개탕의 김을 바라보며 한 모금, 하이볼의 기포를 세어 보며 한 모금. 그렇게 새벽은 지나가고, 다음 날도 남는다.